21-10-03_창24(29-36)_주께서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된 사람의 사명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Oct 3, 2021
- 8 min read
본 장은 (창세기 24장), 주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것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는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종이 구체적으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35 주님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셔서, 주인은 큰 부자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주인에게 양 떼와 소 떼, 은과 금, 남종과 여종, 낙타와 나귀를 주셨습니다. 36 주인 마님 사라는 노년에 이르러서, 주인 어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으셨는데, 주인 어른께서는 모든 재산을 아드님께 주셨습니다.”
종의 증언을 들으면,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큰 부자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모든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을 갖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크게 복을 주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큰 부자가 되었고, 그 모든 재산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자기 아들에게 남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볼 때, 우리는 아브라함이 체험한 것을 우리도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복을 주신다면, 넉넉하고 풍요로운 생활과 우리 가족과 자식들도 건강하고 하는 일이 형통하고 성공하게 해주실거라는 믿음을 갖고, 이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런 믿음으로 구하여, 그 믿고 구한대로 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0 사람이 같이 믿고 구했지만, 10 사람이 다 같은 응답을 받고, 생활이 넉넉하고 부유해지고, 모든 식구들이 다 건강하고 형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같은 걸 구하여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받지 못한 사람도 생겨서, 서로 비교하고, 시기하며,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많이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더 사랑하시고, 궁한 사람은 덜 사랑하신다고까지 믿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과 믿음으로 빠지게 되면,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자기는 다른 사람들 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자기는 가난하지 않고, 못생기지 않고, 문제가 있는 자식들도 없고, 가정 생활이 평화롭고, 하는 일이 늘 잘되기 때문이라고 믿고 신앙 생활을 한다면, 갑자기 불행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생기게 되면, 하나님이 자기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크게 복을 주셔서, 그가 큰 부자가 되었고, 그가 죽는다 하더라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잃지 않고 고스란히 그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러한 아브라함의 스토리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스토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성경 전체에서도, 이렇게 말하거나 약속하는 말씀은 없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누렸던 부와 형통한 삶을 누렸던 인물들은 여기 저기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우리 모두를 위한 모델을 삼기 위한 대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성경 인물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지거나, 자신의 물건과 권리를 빼앗기거나, 억울하게 미움을 받거나, 생명까지 빼앗기는 등, 여러 가지 박해를 당했던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가운데서도, 그들을 부르시고,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중요한 사명을 맡기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등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과 순종으로 그분의 뜻을 따르고 섬겼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비참할 정도로 세상에서 가난과 손실과 고난과 고통을 당했던 것은, 하나님이 이들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으셔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이들의 믿음을 더 강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그리고 그렇게 강해진 그들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더 좋은 계획”을 완성하시는 그 기쁨과 영광에 동참하게 하시려는 마음을 갖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종이 된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부와 명성과 권력을 갖고 하는 일에서 형통하고 성공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빼앗기고, 쫓기고, 당하고, 인생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실패를 맛보기도 하고, 온갖 종류의 가난과 고통과 시련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이들도 있는 겁니다. 전자는 하나님이 더 사랑하시고, 후자는 하나님이 덜 사랑하셔서 그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그분의 섭리 속에서 정하신 것일 뿐이지, 어느 쪽은 더 사랑하시고 어느 쪽은 덜 사랑하셔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셨고, 모두--전자나 후자나--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뜨겁게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서 11장 32-40이 말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32절부터 35절 상은, 전자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34 불의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 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35 믿음으로 여자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가족을 다시 맞이하였습니다.”
35절 하부터 38절은, 후자에 속한 이들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놓여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37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18)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38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그러나 위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았던 사람들이요, 또 하나님이 정하신 마지막 때에 이루시고자 하는 “더 좋은 계획”을, 여러분과 저를 포함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모든 사람과 함께 부활해서, 같이 완성시킬 사람들인 겁니다.
“39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40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인가? 또 누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인가? 하는 것은, 그가 물질적으로 부유한가? 라든가, 또는 그가 하는 일이 잘 되고 성공하고 있는가? 를 보고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갖게 되고, 말만 믿음과 하나님을 위해 사는 거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 사고 방식과 생활 철학과 사는 모습이 자기 중심적이고, 세상적이고, 이기적인 불신자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섭리를 따라, 어떤 이들은 부유하게 하시고, 어떤 이들은 가난하게도 하십니다. 어떤 이들은 형통한 길로 가게 하시고, 어떤 이들은 힘든 길로 가게 하십니다. 실수 없으시고, 모두를 똑 같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시고 허락하시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와 뜻이 있으시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부하고 세상에서 모든 것이 잘 되는 형제나 자매는, 그런 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끊임없는 감사와 찬양을 드릴 뿐만 아니라, 그런 복을 자신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목적을 받들어 섬기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 중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에게 바울은 “교만해지지도 말고,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도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그들을 부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그 사명을 받들어서, 자신들의 물질로 “선을 행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즐겨 나누어주라고” 가르쳤습니다. 부자들은 이렇게 하여서, 저들의 “앞날을 위하여 든든한 기초를 스스로 쌓아서, 참된 생명을” 얻게 되는 거라고, 바울은 가르쳤습니다 (데모데전서 6:17-19).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부자가 된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데, 그 이유가, 저들을 위해 하나님이 정해주신 분량에서 만족함을 갖고자 하지 않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만족하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혀서 그러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돈과 바꾼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다릴 때보다는, 돈이 더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즉각 얻게 해주는 것을 맛보면서, 하나님보다 돈을 더 믿고 사랑합니다. 이것은 부자들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역시 바울은 우리에게 이런 길로 빠지지 말고,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사람이 되라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욕심에 빠져서 결국은 돈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8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9 그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립니다. 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8-10)
특히 부의 복을 받은 형제자매들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자신에게 부유함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인정하고, 이를 위해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일이며, 더 나아가서, 이러한 복을 내려주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받들어서 섬기는 일입니다. 이를 위한 좋은 모범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당시에 그 누구보다도 부유했고 행복했던 사람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자신의 재물과 또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대상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 한 예로 조카 롯과 헤어져야 할 때가 왔을 때, 조카가 먼저 원하는 땅을 택해서 가게 한 일을 들 수 있습니다. 롯은 자기가 먼저 더 좋고 기름진 땅을 택하여 떠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덜 좋은 땅을 차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기가 더 기름진 땅을 갖는 것보다, 조카와 불화를 그치고 화평된 관계를 살리는 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조카가 더 기름진 땅을 원하여 선택하였을 때에, 조금도 미련을 두지 않고, 조카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던 겁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물질과 부에 대한 욕심보다,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에 살던 조카가, 엘람 왕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에게 패배를 당한 소돔 사람들과 함께 붙들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집에서 훈련시키고 준비해두었던 군사 318 명을 이끌고 가서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패하고, 조카와 소돔 사람들을 구출해서 돌아왔을 때, 소돔의 왕은, 아브라함더러 사람들은 자기에게 돌려주고, 모든 물품은 아브라함이 다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러한 소돔 왕의 선의를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했습니까? 당신으로부터는 실오라기 하나나 신발 끈 하나라도 받지 않겠다고 했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 힌트는 창세기 13장에서 이미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악하고 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가치관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겁니다. 악과 악인들과는 실오라기 하나로도 붙게 되기를 원치 않았고, 세상의 물질적 이익보다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모습은, 큰 돈을 얻을 수 있는 거라면, 선하지 못하고 악한 방법이라도 서슴치 않고 타협하는 많은 사람들과 대조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오랜 세월 하나님을 따라 동행하면서, 그 가치관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큰 부와 행복의 조건들을 누구보다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단 한순간도 그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이삭을 번제로 바쳤던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전혀 주춤하거나 지체하지 않고, 자기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산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려고 칼을 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손을 급히 막지 않으셨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이삭을 번제물로 드렸을 겁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령을 이렇게까지 받들어서 행하려고 했던 아브라함에게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고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의 마음이 세상 모든 부와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으로부터까지 떠나서,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전적으로 헌신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셨던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맡기실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실 수 있었던 겁니다. 이러한 사람이라면, 그에게 세상의 모든 보화를 준다 하더라도, 그의 마음을 그 보화들에게 빼앗기지 않을거라는 결론을 내리실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또 그에게 약속하셨던 큰 복을 아브라함에게 정말 주실 수 있었고, 그 계획을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서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을 받도록 해주신 겁니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서, 16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친히 맹세한다. 네가 이렇게 너의 아들까지,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너의 자손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창세기 22:15-18)
마태복음 첫 장의 첫 머리에서 나오는 말씀이 이를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 (마태복음 1:1). 이 예수님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마태복음 1:21), 또 세상 “모든 민족”도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사함을 받고, 그분을 믿고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을 사람들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믿고 쓰실만한 그릇으로 인정을 받았던 겁니다.
물론, 아브라함처럼, 세상적인 부유와 힘과 명성의 복을 받았던 사람들이 구약시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아브라함처럼 끝까지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두고, 그분의 길을 지키며 살았던 사람은 드뭅니다. 모두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 보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큰 죄악을 저지르고, 고통스러운 징계와 벌을 받았습니다. 이를 볼 때,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되어 그분을 떠나지 않고, 그분의 명령을 행하지 않는다면, 모든 부와 명예와 권력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리켜 복받았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세상적인 부유와 성공과 편리와 명예가 아닙니다. 반면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제일 먼저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다음이며 마지막으로는, 나의 이웃을 나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에게 세상적인 부와 힘과 명예가 있든 없든, 많든 적든,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력까지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믿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비율적으로 적습니다. 그러나 몸이 연약하다고, 가난하여 내어 줄 것들이 없다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없는 이유와 핑계는 전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부와 명예와 권력의 복을 받은 사람은, 그것들을 통해서 더 겸손히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특권을 받지 않은 형제자매들은, 자신을 저들과 비교하고 시기하며, 불만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세상적인 부나 명예나 권력을 갖게 되면,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그것이 복이 되기 보다는 화의 요인이 되어, 결국은 하나님을 뒤로하고, 자기의 욕심에 깊이 빠져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봅니다.
세상에서 부하게 되는 가난하게 되든,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되든 못되든, 여러분과 저의 할 일은, 오로지 한 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을, 자신의 외아들의 생명보다 더 사랑한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준 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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