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08_창21(14-21)_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Aug 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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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 .”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신 것은, 사랑스러워서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눈에 비치는 모든 인간의 마음과 그 행실은 사랑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오직 악할 뿐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창세기 6:5). 이러한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시게 (창 6:6) 하기만 합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 대해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창세기 8:21) 라고 진단을 내리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주님께 여쭙기를,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바울도 에베소서 2 장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전,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 (1절) 이요,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2절) 살면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 .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3절).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4-5절).
그러니까, 하나님은 세상이 사랑스럽거나 구원받을 만한 자격과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그분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더더욱 구원받은 여러분과 제가 그나마도 구원받지 않은 이들보다 의로워서 구원해주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신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비가 넘치시고 그 사랑이 크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4).
이 사실이 오늘 본문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그 엄마와 함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게 된 이유는, 이스마엘에게 잘못이 있어서였습니다. 아버지는 같지만, 배는 다른 동생 이삭이 젖을 떼던 날, 아버지 아브라함은 이삭을 위해서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때 이스마엘의 나이는 적어도 17 살이었습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날 때, 아브라함이 86 살이었고, 이삭이 태어날 때는 그의 나이가 100 살이었습니다. 이 때 이스마엘은 14 살이었고, 이삭이 태어난 지 3 년 만에 젖을 떼었다고 한다면, 이스마엘은 17 살인겁니다.)
17 살의 이스마엘이 3 살짜리 동생 이삭이 젖뗀 것을 기념하는 큰 잔치 중에 그 동생을 어떤 말과 행동으로 놀렸는지, 성경은 자세히 언급을 하지 않고 있지만, 사라가 보았을 때에는 이삭을 위해서, 이스마엘과 그 엄마인 하갈을 더이상 집 안에 둘 수 없는 이유가 될 정도였으니, 아마도 이스마엘의 장난이 도가 넘어간 장난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사라의 요구를 따라 이스마엘과 하갈을 집에서 내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신의 아들인지라, 차마 그리할 수 없는 마음이었지만, 하나님께서도 이삭과 이스마엘은 떨어져야 하고, 이삭만이 아브라함의 이름을 이어갈 씨라고 하시면서, 아내의 말을 따르라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갈은 졸지에 아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아들과 함께 집에서 쫒겨나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엄마가 자신과 함께 집에서 쫓겨 나고 말았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사로잡혔을 겁니다.
두 모자는 쫓겨나서 브엘세바라는 빈 들에서 정처없이 방황하다가, 결국 가죽부대의 물이 다 떨어지고 말았고, 하갈은 아들을 한 응달에 있게 하고 자신은 화살이 날아갈만한 거리만큰 떨어져서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하갈은 울면서, 자신을 많이 탓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자기가 처음 이스마엘을 임신했을 때, 여주인 사라에게 교만하게 굴지만 않았더라도, 지금까지 오랜 세월 여주인의 미움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테고, 지금 아들과 함께 이렇게까지 집에서 쫓겨나서 이 빈들에서 마실 물이 다 떨어져서 아들과 함께 죽을 수 밖에 되지는 않았을거라고 말입니다.
그 때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천사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하갈에게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이가 저기에 누워서 우는 저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아이를 안아 일으키고, 달래어라. 내가 저 아이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17-18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사의 말씀에 따르면, 소리내어 울고 있던 사람은 하갈만이 아니라,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도 울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이스마엘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엄마마져 비참하게 되어 죽게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깊은 죄책감 속에서 울고 있었을 겁니다. 두 모자는 자신들의 잘못이 가져 온 결과 앞에서 자신들을 탓하고 있었을 테고, 피할 수 없이 다가오고 있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소리 내어 울고 있던 하갈과 그 아들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시며 다가 오셨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찾아 오신 하나님의 천사의 입에서는 저들을 책망하시거나 정죄하시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는 겁니다. 이들이 당하게 된 고통과 위기가 이들이 잘못하여 당하는 것이었지만, 이들이 아브라함이나 사라를 원망하거나 탓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자비를 구하였을 때, 하나님은 이들에게 정죄하시거나 책망하시는 말씀 한 마디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는 용서와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과 진리 속에 여러분과 저의 소망이 있고, 기쁨과 감사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의 대부분은, 우리의 욕심과 어리석음과 교만의 열매가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과 제가 우리의 고통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탓하기보다 우리의 잘못을 자백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용서와 도우심을 구하며, 고통과 회심의 눈물을 보여드릴 때, 하나님은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과 허물을 들추어 내기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또 우리에게 죄책감을 불어 넣어주며 정죄하기를 즐기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오히려 이런 것은 같은 죄인들끼리 서로에게 그렇게 합니다. 자신도 죄인이고 허물과 잘못이 많은데도,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을 들추어내고, 책망하고, 정죄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죄가 없으신 분이신데도, 죄인들의 죄를 들추어내고 책망하며 정죄하시는 것보다 덮어주고, 용서하고, 새롭게 만들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찾아 오셔서, 얼마든지 저들에게 책망의 설교를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울음과 눈물 속에 자신들의 후회와 회개와 뉘우침을 담은 마음을 보신 하나님은, 이미 이들을 용서하시고 자비와 사랑의 품으로 안아 주시며,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시고 (“내가 저 아이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 당장 필요한 식수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니, 하갈이 샘을 발견하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담아다가 아이에게 먹였다”). 그리고 이스마엘과 “늘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세상에는 의인과 죄인 두 부류가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영광 또는 하나님의 기대와 수준에 미칠 수 있는 의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죄인만 있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모르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큰 죄를 지었어도, 그것을 뉘우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원하는 사람의 귀에는 하갈이 들을 수 있었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정죄와 멸하시기를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회개하는 자들은 용서하시고 생명과 풍성한 삶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은, 자비와 사랑이 넘치고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모두 전에는. . .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 . .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서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 .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3-5, 8-9).
“주, 나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하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며, 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다” (출애굽기 34:6, 7).
여러분과 저의 죄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용서해주시고, 새 생명과 끊임없는 은혜를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오늘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이 찬양과 감사는 영원토록 드려도 충분하지 못하지만,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마다 마음과 뜻을 다해 드립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저희에게 영원한 자비를 끊임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죄인인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라 불러주시고,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라고 불러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또다시 새롭게 헌신하십시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얻은 저희의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옵고, 저희를 부르신 뜻을 따르고자 새롭게 헌신하는 저희에게 능력과 지혜를 더하여 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얻게 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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