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1_창20(7, 17-18)_그는 기도할 것이고, 너는 살 것이다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Jul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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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제 그 여인을 남편에게로 돌려보내어라. 그의 남편은 예언자이므로, 너에게 탈이 나지 않게 하여 달라고 기도할 것이고, 너는 살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너에게 속한 사람들이 틀림없이 다 죽을 줄 알아라. . .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이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태를 열어 주셨다. 18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데려간 일로, 주님께서는 전에 아비멜렉 집안의 모든 여자의 태를 닫으셨었다.
성경에서 기도라는 말이 처음 나온 곳이 바로 오늘 본문의 7절입니다. 7절 내용에 따르면, 기도하는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필요한 사람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자기 아내로 삼기 위해서 데려갔다가, 하나님의 진노와 경고를 얻게 된 아비멜렉입니다.
사실 아비멜렉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말하기를 저들 사이가 오라버니와 여동생 관계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만일 두 사람이 부부 사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사람들이 사라를 빼앗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죽일 거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비멜렉은 “깨끗한 마음으로 떳떳하게 이 일을” 한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에게 자신의 떳떳한 행동을 변호했습니다. 하나님도 그를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그 남편에게 돌려 보내라고 명하시면서, 만일 그리하지 않으면, 아비멜렉과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은 다 죽을 거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면, 아브라함이 그를 위하여 기도해줄텐데, 그러면 아비멜렉과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죽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은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선대하였습니다. 아내를 돌려받고 후한 선물을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이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태를 열어주셨”는데, 이는 그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데려간 일로” 주께서 “아비멜렉 집안의 모든 여자의 태를 닫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늘 찾아오던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서 좀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보호를 전적으로 확신했다면,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부끄럽고 비겁한 행동과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테고, 더 나아가서 한 왕과 그의 왕국이 패망의 위기에 빠지게 했던 일을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한 그릇으로 택하심을 받은 자가, 자칫했으면, 한 민족을 하나님의 저주와 벌을 받아 멸망하게 할 뻔했던 겁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중요한 경고가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일 큰 위험은, 만일 사라가 아비멜렉의 아내가 되어버렸다면,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해 줄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 태어나게 해주시겠다던 하나님의 약속이 영영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될 뻔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이 성취됨으로써 전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뻔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크나큰 불신과 거짓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 속으로 직접 개입해 들어오셔서, 그 흐름의 방향을 주님의 섭리 쪽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신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과 약속을 막거나 바꿀 수 있는 사람이나 일이 없다는 사실과, 하나님도 자신이 세우신 계획과 하신 말씀과 약속을 바꾸시지도 않고, 변덕도 부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신다.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변덕을 부리지도 아니하신다. 어찌 말씀하신 대로 하지 아니하시랴? 어찌 약속하신 것을 이루지 아니하시랴?” (민수기 23:19).
“아버지께서는 이러저한 변함이나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십니다” (야고보서 1:17).
“만군의 주님께서 계획하셨는데, 누가 감히 그것을 못하게 하겠느냐?” (이사야서 14:27).
창세기 20장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은 변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약속은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해 들은 “말씀을 헛되이 믿지 않고, 그것을 굳게 잡고 있으면, 그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
“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1:23-25).
비록 아브라함과 사라는 크나큰 죄를 저지르며,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으나,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현실을 능히 돌려서 가능한 현실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그분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2:13).
그렇다고 여러분과 제가 마음 놓고 실수를 저지르고 어리석은 행동을 습관적으로 반복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의도적이고 습관적인 죄악과 어리석음은 반드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불러올 뿐 아니라, 그러한 패턴 속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사람이 아닌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20 사람들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거기에 말려들어서 정복을 당하면, 그런 사람들의 형편은 마지막에 더 나빠질 것입니다. 21 그들이 의의 길을 알고서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했던 편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22 다음과 같은 속담이 그들에게 사실로 들어맞았습니다. ‘개는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 그리고 ‘돼지는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 뒹군다.’” (베드로후서 2:20-22).
반면에,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연약함 가운데서 행하게 되는 어리석음과 죄악들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들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물론 우리가 저지르는 어리석음과 죄악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눈감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 속에 다시 빠지지 않고, 우리가 주님을 뵙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거룩함에 이르게 되도록 고통스럽게 징계하십니다(히브리서 12:4-14).
그러나 우리를 창세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사랑해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에베소서 1:4-5)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게 되더라도, 우리를 정죄하시거나,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1-2). . .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33-34). . .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죄짓는] 일도, 장래[에 죄지을] 일도, 능력도, 높음도, [죄에 빠져 있는 상태의]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38-39).”
바울이 이렇게 확신을 갖고 외치는 신앙고백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큰 잘못에 대해서 정죄하시거나, 나무라시는 말씀이 한 마디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불려가서 그로부터 호되게 질책을 받으며 부끄럼을 당했어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한 마디의 정죄하시는 말씀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호하시고 도우시며, 생명을 지켜주실 뿐만 아니라, 아비멜렉으로부터 선대를 받게 하시고, 선물도 풍성하게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을 자기의 사람으로 택하여 부르시고(창세기 12:1-3),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을 때 의인으로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여전히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어도, 이미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된 사실 때문에, 더이상 하나님의 정죄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된 것과 동일한 의미인겁니다.
반면에, 깨끗한 양심으로 떳떳하게 행동한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그 양심은 이해하시고 인정하시면서도, 그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정죄하시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회개하여, 사라를 다시 그 남편에게 돌려보내주지 않으면, 죽음을 면할 수 없도록 하신 것을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불공평하게 차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의롭다 여김을 받은 은혜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었고, 아비멜렉은 아직까지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서 이 은혜 안으로 들어 와서 구원을 얻기를 원하시는 겁니다(디모데전서 2:4).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본문 7절과 17-18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죽게 되어 있던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를 들으시고 아비멜렉을 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7절에 의하면,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시고 명하신 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죄인인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먼저 의인이라 불러주신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아직 하나님의 정죄와 진노의 대상이 되어 있는 불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이 오늘 본문(7, 17-18)의 메시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와 기도와 중보 기도와 감사 기도를 드리라고(1)” 권하면서,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이며, 기쁘게 받으실 만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3-4)”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아비멜렉이 살 수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우리의 ‘아비멜렉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그들이 구원의 반열에 들어올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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