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7_창19(30-38)_이런 사람들에게도 소망이 있는 이유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Jun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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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창세기 12장 3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 복은 모두가 무조건 받는 복은 아닙니다. 이 복을 받으려면, 아브라함을 “축복”(창세기 12:3) 해야 하고, 저주하면 안됩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한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한다는 뜻입니다. 또 아브라함을 저주한다는 것은, 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배척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으로 [또는 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을 복은 어떤 복일까요? 이 복은 하나님이 새롭게 만들고 계시는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로마서 4:13) 되는 복입니다. 베드로도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주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베드로후서 3:13)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을 누구보다도 먼저 받을 수 있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새로운 세상의 것들보다, 현세의 것들에만 관심을 두고, 복의 근원이 되는 큰아버지와 그의 신앙에서 떠나갔습니다. 아마도, 큰아버지의 신앙을 가까이에서 관찰해 오면서, 자식이 없던 큰아버지 내외에게 아들을 낳게 해주실 거라고 약속만 하시고 오랜 세월이 가는데도 그것을 이루어주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가질 않고, 또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한없이 기다리며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노령에 이르는 큰아버지 내외가 너무 현실을 모르는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 같습니다.
여하튼, 롯은 복의 근원이 되는 큰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거부하고, 자기 눈이 보기에 좋다고 생각한 지역을 향해 떠나갔습니다. 그 지역에는 악하기로 소문이 나고 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는 소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롯의 가치관이 드러납니다. 넉넉하고 부요한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악하고 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 주님과 멀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는 안중에 없습니다.
롯은 생각보다 빨리 소돔에 자리를 잡고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창 14:12). 그러나 하나님은 롯에게 세상이 제공하는 행복과 재물은 순식간에 다 잃을 수 있다는 교훈을 배울 기회를 만드셨습니다. 롯이 살고 있던 소돔과 고모라에 동방 연합군이 쳐들어와서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모든 재물과 먹거리와 노예로 삼을 사람들도 붙잡아 빼앗아 갔는데, 롯도 붙잡혀서 끌려갔고, 롯의 재산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롯이 깨달었어야 할 교훈은 잠언서 23:4-5 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그런 생각을 끊어 버릴 슬기를 가져라. 한순간에 없어질 재물을 주목하지 말아라. 재물은 날개를 달고, 독수리처럼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다행이 큰아버지가 집에서 훈련시켜 놓은 사병 318 명을 데리고 쫓아가서 적들을 쳐부수고, 모든 재물과 사람들을 되찾아 올 수 있었지만, 롯은 구출된 후에도, 여전히 소돔에 거주했고, 여전히 많은 재산을 늘려가며 호화롭고 편안한 삶을 즐깁니다. 혹 이 때 롯이 그가 체험한 것을 통해서 그 교훈을 깨닫고 마음을 돌이켜서 큰아버지와 그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면, 성경에 기록된 롯의 스토리는 완전히 다르고 복된 내용이었을 겁니다.
불행하게도 오늘 본문에 기록된 롯의 말로는 비참하고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아내를 잃은 외롭고 무능한 노인이 되어, 시집을 못가고 있는 두 딸과 함께 산 속의 어두운 굴 속에서 은둔의 삶을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행에 큰 불행이 또 덮쳤으니, 그것은 롯의 두 딸이 늙은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한 후, 아버지로부터 씨를 받아 아버지의 아이들을 낳은 것입니다.
롯의 두 딸은 해서는 안될 일을 한 점의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없이 당돌하게 행하였습니다. 이들의 이유는 아버지도 재혼할 수 없는 상황이고, 자신들도 도저히 시집을 가게 될 형편이 못되어, 아버지의 대가 영원히 끊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세 부녀의 상황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당면한 상황과 흡사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있는 모습이었고, 롯의 두 딸은 자신들이 보고 자랐던 소돔 사람들의 문화와 풍속을 따르는 모습인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진리를 마음에 새겨 넣어야 합니다. 분별력없이 세상의 문화와 풍속을 대하고 따라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 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다고 하시는 것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사는 모습과 가치관은 세상적인 모순된 신앙인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살면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물든다는 말은 세상을 좋아한 나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사고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문화를 꺼리지 않고 수용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선하고 악한 것인지, 무엇이 거룩하고 더러운 것인지를 분별할 줄 모르면, 악한 짓을 하면서도 그것이 악한 것인지를 모르고, 오히려 정상적이고 유익한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롯의 두 딸은 엄격하게 말하면, 아버지를 꾀어서 강간한 범죄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범법행위이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기 보다는, 이들이 당면한 상황에서는 당연하고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을 낳고도 버젓이 “모압” (“아버지에게서 받은 아이”) 그리고 “벤암미” (“나의 혈육의 아들”)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죄를 짓고 있는 일인데도 죄라고 여기지 않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바뀌어 있는 사회적 표준과 문화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분별하며 대응하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따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표준으로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거짓과 진리를 분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두운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추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그 분 앞으로 나오도록 하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우리더러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사고방식과 가치관의]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로마서 12:2)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0장에서도 “우리는 궤변을 무찌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모든 교만을 쳐부수고, 모든 생각을 사로 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 (4, 5절) 하게 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가르칩니다.
베레아 사람들은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울이 설교하는 내용조차도, 성경을 따라서 설교하는 내용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며 들었는데,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이러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칭찬하여 베레아 사람들은 “고상한 사람들” (사도행전 17:11)이라고 칭찬했습니다. 믿음의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어서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말과 사상과 문화와 주장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과시켜서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해 내고, 진리인지 비진리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겁니다. 여러분과 저도 이러한 고상한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를 빕니다.
여하튼, 롯의 두 딸은 각각 아버지의 씨를 받아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큰 아이의 이름은 모압이고, 작은 아이의 이름은 벤암미입니다. 그 후손들은 이름을 바뀌지 않고, 조상의 이름을 간직하여 각각 모압 백성, 암몬 백성이라 자신들을 불렀습니다. 이 아이들은, 아버지가 저들의 할아버지고, 엄마가 그 할아버지의 딸이니, 도덕적으로 추하고 퇴폐적 관계 속에서 태어나 성장한 아이들인 겁니다.
세상은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열등하게 여기고 놀리고 흉볼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환영해주지 않고, 꺼리고 거부하는 대상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흉보고, 업신여기고, 놀리고, 꺼리고, 차별하고, 거부하는 사회에 대해 증오와 보복의 마음을 갖게 되고, 성격과 행위가 난폭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을거라 생각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후일에 하나님께서 모압과 암몬을 심판하실 때 말씀하신 저들의 죄악들 중에 암몬 자손은 “땅을 넓히려고 길르앗으로 쳐들어가서 아이 벤 여인들의 배를 갈랐”고 (아모스서 1:13), 모압은 “에돔 왕의 뼈를 불태워서, 재로 만들었”(아모스서 2:1)다고 합니다. 암몬은 살아있는 여인들에게, 모압은 이미 죽은 자에게, 끔찍하고 악독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저질렀던 사람들입니다.
모압과 암몬 사람들이 섬기던 신들의 이름은 각각 그모스(모압)와 몰렉(암몬)인데, 둘 다 저들의 신에게 유아인신제사를 바칩니다. “다른 신들이 음란하고 음탕했다면, 그모스와 몰렉은 잔인하고 포악하다”고 말합니다. (출처: https://392766.tistory.com/entry/성경의-신들-7-그모스Chemosh-몰렉-밀곰Milcom [Pensées])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해서 그모스 신을 섬기는 모압과 몰렌 신을 섬기는 암몬을 적군들에 의해서 완전히 패망시키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레미야 48-49장). 스바냐 선지자는, 모압과 암몬 자손이 친척관계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만한 태도로 욕과 악담을 퍼붓고 국경을 침범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들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하실 거라고 예언했습니다 (스바냐서 2:8-10).
이와 같이 모압과 암몬 사람들은 난폭하고 잔인한 악인들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엄격히 보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으로부터 떠나서 죄악의 도시로 들어와서 산 롯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압과 암몬 사람들을 좋아하여 한 패거리가 된 사람들은 모두 악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한결같이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을 미워하고, 같이 힘을 모아서 이스라엘을 치려고 했습니다 (시편 83:1-8).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와 벌 밖에는 받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모압과 암몬을 심판하시려는 것은, 이들을 완전히 멸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도록 해서 다시 회복시키시려고, 무섭게 징계하시는 거라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서 48:47과 49:6이 이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훗날에 나는 사로잡혀 간 모암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48:47). “그러나 그렇게 한 뒤에는, 내가 사로잡혀 간 암몬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49:6).
만일 하나님께서 모압과 암몬을 영원토록 멸하셨다면,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부당하다고 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모압과 암몬이 원채 잔악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오히려 세상은 모압과 암몬을 다시 일어날 수 없도록 완전히 멸하신 것을 감사하고 찬양할겁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하고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자신의 죄악으로 죽게 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악인도 그 죄로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당연히 영원한 처벌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할 악인이라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면 살려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마음이요 약속이십니다.
그러니, 모압과 암몬을 영벌에 던지시지 않고, 무섭게 징계하신 후에 다시 회복하시겠다고 하신 겁니다. 사실 여러분과 저도, 모압과 암몬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다. 바울이 에베소서 2장에서 강조한 진리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들으면서, 잔악했던 모압과 암몬을 영벌에 던지지 않고, 회개하게 하시고 회복하시길 원하셨던 하나님께서, 똑같은 자비와 은혜로 여러분과 저를 영원히 멸망하게 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함받게 해주시고, 그분의 부활하심 속에서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얻고, 더이상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새 피조물이 되게 해주신 사랑을 마음 깊이 새기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더욱 깊은 감사와 사랑이 충만해지도록 하십시다.
“1 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2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4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5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7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멘.
제게 주시는 말씀 감사합니다.. 무거웠던 모든 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해 주시고, 새롭게 살수 있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일에 동참할수 있는 도구로 쓰임 받게해 주시는 은혜, 하나님께 감사 감사를 올려 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