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8_창17(9-14)_할례: 몸에 새긴 언약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Apr 18, 2021
- 4 min read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모든 남자가 받아야 하는 할례의 유래를 보여줍니다. 할례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하나님과 특별한 언약을 맺은 것에 대한 표징입니다. “너희는 포피를 베어서, 할례를 받게 하여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우는 언약의 표이다”(창 17:11). 사실 이번에 하나님과 아브람이 맺은 언약은 두번째 언약입니다.
첫번째 언약은 창세기 15장에 기록되었습니다. 그 언약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몸에서 상속자가 나올 것이고, 그로부터 엄청난 수의 자손이 나오게 해주시겠다는 것과 그들에게 모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 .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 .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4-5절)
“바로 그 날, 주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를 너의 자손에게 준다. 이 땅은 겐 사람과 그니스 사람과 갓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르바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을 다 포함한다.’”(18-21절).
오늘 본문은 두번째 언약인데, 이 언약 속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세계 여러 민족과 그들의 왕들이 나오도록 그를 크게 번성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5-6절).
하나님은 앞으로 영원히 아브라함과 그 자손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7, 8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한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8절).
2번과 3번의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의 직계 혈통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고, 이스라엘은 영원히 가나안 땅의 소유주가 될거라는 약속입니다
1번은 아브라함이 세계 여러 민족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 민족이라는 말은 여러 인종과 여러 언어를 쓰는 민족들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한 혈통에서 나올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약속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믿음을 공유할 사람들의 조상이 될거라는 뜻입니다. 오늘 날 세계 만민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신도들이 바로 이들이요, 여러분과 저도 바로 이 반열에 속하게 된 겁니다.
여러분과 제가 누리게 된 이 놀라운 구원의 복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감격스러운 하나님의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아브라함의 혈통이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으로서 모든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거나 맞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건만, 어떻게 여러분과 저는 한국인인데도,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영접할 수 있었을까요? 신비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언어가 다르고 인종이 다른 여러분과 저는 분명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나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게 된 것으로 인해,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후손들이 된 겁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1장 11-13절이 말하는 의미입니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세계 모든 인종 중에서라도]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받은 복] 주셨다. 이들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
하나님은 이렇게 놀라운 언약을 아브라함과 세우시면서, 그와 그 후손 중에 모든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할례는 아브라함의 직계 혈통 및 그들과 함께 거주하는 집안 종들이라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 예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할례 예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부터는 그분을 맞아 들이는 것으로 족하였기 때문에, 더이상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예식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이 오신 다음 부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위해 (유대인이든 이방이든) 살갗에 할례를 받는 것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살갗에 받는 할례보다,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로마서 2:29)라고 가르칩니다.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는, 곧 성령으로 거듭나는 중생의 체험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은 성령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게 될 새 사람의 마음을 주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령에 의해 다시 태어난다고 표현합니다.
이런 사람을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옛 것”이 지나갔기 때문이라고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지나갔다는 말은 떨어져 나갔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할례는 남자의 성기 끝부분을 덮고 있던 포피를 칼로 베어버리는 일니다. 구약의 신도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할례를 행하여 그 몸에 영원한 표를 만들어서 보였지만, 신약의 신도들은 성령을 따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옛 사람의 마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의 마음을 받은 증거들로 자신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보입니다.
구약신도들은 그들의 몸에 그 증거가 있었고, 신약신도들은 그들의 몸으로 움직여서 살아가는 증거들을 보입니다. 몸, 즉 살갗에 표가 새겨진 것으로만 자신이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몸의 행실에서 그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사실이 표시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 과연 하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이냐는 칼로 몸에 받은 할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은 할례 즉,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성령의 열매가 증명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경고하신 의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칼로 살을 도려내는 할례는 중단되었지만, 성령으로 옛 마음을 도려내고 새 마음을 얻는 마음에 받는 할례는 여전히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으로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고는, 즉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늘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요한복음 3:3-5).
그리고 성령으로 마음에 할례를 받고 새 마음을 얻은 사람은, 반드시 그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열매란 마음의 변화, 즉 생각과 삶의 우선 순위와 목적, 그리고 성품의 변화가 몸의 행실 속에서 드러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요단강에서 침례사역을 하던 침례자 요한은 자기에게 침례만 받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멸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몰려 오던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들”을 향해서 신랄하게 호통을 치며, 저들의 잘못된 생각과 믿음을 바로 잡아주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 . 도끼를 이미 나무 뿌리에 갖다 놓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실 것이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침례를 준다. 내 뒤에 오시는 분(예수님)은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분이시다. . . 그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3:7-8, 10-11).
주님도, 산상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말로만 주님을 믿고 행실로는 불법을 행하는 거짓 신자들을 향해 경고하셨습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복음 7:21).
사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분의 복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몸에 할례를 받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로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이 하나님과 특별한 언약관계를 맺고, 그분의 복을 받고, 그분이 영원토록 저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는 약속을 얻은 놀라운 은혜와 그 목적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 이를 상기시켜주는 표시를 자신들의 몸에 새겨 넣으라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할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매순간 자신의 몸에 새겨진 할례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시고 복을 주신 은혜와, 자기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지요. 할례는 바로 자신이 이렇게 살아야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 시켜 주는 표시였던 겁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할례를 명하신 하나님의 마음이었다는 사실이 창세기 18장에서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 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18-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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