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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7_창15(7-21)하나님 백성의 훈련

  • Writer: 전재균목사 (Pastor Chun)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Mar 7, 2021
  • 8 min read

창세기 15장은 하나님과 믿음의 조상 아브람의 대화 내용을 보여줍니다. 그 전까지는 조용하게 하나님을 따르던 아브람이었습니다.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는데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5장부터는 아브람이 입을 열고,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씀도 드리고, 이해를 못하는 것들은 서슴치 않고 여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더 열고, 더 깊은 곳으로 하나님을 초청하는 모습입니다. 그만큼 아브람이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는 증거인거죠. 놀라운 것은 이러한 아브람에게 하나님도 그분의 마음 속에 있는 계획과 뜻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드러내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더 가까워지시길 원하시고, 우리를 향하신 그 분의 마음과 뜻을 더 알게 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분량에 달렸습니다. 예수님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요한복음 14:21) 거라고 하셨으니까요.


지난 주에는 하나님과 아브람의 대화 중 첫 부분을 (1-6절) 다뤘습니다. 오늘은 둘째 부분을 (7-21절) 다룹니다.


첫 부분에서는 그동안 아브람이 오래동안 답답해 하며 궁금해 하던 것을 시원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기름지고 넓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시지만, 그 땅을 물려 받을 자식이 없는 아브람에게는 사실 그 약속이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기름지고 넓은 가나안 땅과 자신의 모든 재물은 결국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종과 그 후손들) 상속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밤하늘의 셀 수 없는 별들을 보여주시면서, 저렇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자손이 그의 몸에서 나올 것이고, 바로 그들이 그의 재산과 가나안 땅을 물려 받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밤하늘의 별들과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다시 아브람에게 큰 확신과 믿음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아브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그것을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믿음을 의롭다고 여기셨다는 것은, 그 믿음을 하나님이 믿을만 한 것으로 여기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이 믿을만하다고 여기게 되셨을 때에, 자신의 뜻과 계획을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내주셨습니다. 그래서 7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여호와)다. 너에게 이 땅(가나안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


이 말씀은 여러분과 저도 이젠 익숙한 말씀이지요? 아브람을 처음 부르실 때부터 약속하신 똑같은 내용 아닙니까? 아브람과 그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은 이미 여러 번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던 겁니다 (창세기 12:1, 7; 13:14-17). 아브람도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기 시작하실 때에는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이전에 하신 말씀을 또 하시는구나 하며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같은 내용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새로운 단어를 추가하신 것을 듣는 순간 아브람은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단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땅을 약속하실 때 하셨던 말씀들을 모아보겠습니다.


  1.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창세기 12:1).

  2.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 .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 .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창세기 12:4-5, 7).

  3.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 .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니, 너는 가서, 길이로도 걸어 보고, 너비로도 걸어 보아라” (창세기 13:14-15, 17).


위의 말씀들을 종합해서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그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아브람과 그 자손에게 주신 땅이라는 겁니다. 가나안 땅이 아브람과 그 자손이 살 곳이 된 것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자, 그러면 이제는, 오늘 본문 7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똑같은 내용의 약속이지만, 어떤 새로운 말이 첨가되었는지 잘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다.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 어떤 말씀이 새롭게 더해졌나요?


땅을 주셨는데, 어떻게 하려고 주신거라고 하셨습니까?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이것이 새롭게 첨가된 말이고, 아브람은 이 말이 더해진 말씀을 들으면서 놀라고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 이유는 원어의 뜻을 알 때,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 말로 길게 번역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라는 원어는 ‘라리쉬타’ 입니다. 그 뜻은 다양한데, 본문에서 의도한 것은 ‘어떤 장소 또는 공간을 차지하다’ 라는 의미인데, 특히 그 장소의 소유권을 갖고 있던 자를 힘으로 몰아내서 차지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그 장소에서 사람을 몰아내주는게 아니고, 내가 내 힘으로 몰아내어, 그 장소를 내가 차지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아브람과 그 자손이 가나안 땅을 얻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결정하신 일이지만, 실제로는 아브람과 그 자손의 힘으로 가나안 땅의 모든 민족을 몰아내고 차지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와 그 자손이 큰 전쟁을 치루어 그 땅을 차지하게 되는 거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니 아브람은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숨이 막힐만큼 놀랐을 겁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라리쉬타’ 라는 말씀을 하시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그와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살면서 안전하게 해주시고,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셔서, 더 크고 많은 땅을 구입할 수 있게 해주시는 걸로 이해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의 심중에 있던 뜻을 정확하게 알게 되고는, 아브람은 당황했을 겁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 온 이후부터, 그 곳 주민들과 평화롭게 지내며, 서로 의지하며 돕고 살아오고 있는 가나안 주민들을 무력으로 쳐죽이고 내쫓아서 그들의 땅을 차지하게 될 거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상상하고 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계획인지라, 몹씨 당황스럽고 혼돈스러웠을 겁니다.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는 가나안 주민들에게 그렇게까지 해서 그들의 땅을 빼앗아 갖는다는 일도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테고, 혹 그리하고 싶어도, 아브람에게는 그리할만한 병력도 없었습니다. 물론 최근에 롯을 구출해 오기 위하여 집안에서 키운 사병 318 명으로 그 강력한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무찌르고 조카를 구출해 오기는 했지만, 사실 그리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아브람과 몇 되지 않는 사병들의 힘으로 한 일이 아니었거든요.


사실 그 신비로운 승리의 경험은, 아브람의 후손이 400 년 후에 또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의 전조였던 겁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생각과 믿음은 아직 거기까지는 닿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이 일을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지, 그것이 언제 일어날 일인지, 그리고 그 때를 어떻게 알 수 있게 되는 건지 등의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당황하고 놀란 아브람의 생각을 더 복잡하고 답답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주님께 여쭙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아브람은 자기가 이 일을 어떻게 이루라는 말씀이냐고 여쭙고 있는 겁니다. 꼭 그러한 방법으로 (전쟁) 땅을 차지해야만 하는 거냐고 여쭙는 겁니다. 자신에게는 능력도 없을 뿐 아니라, 마음이 허락질 않는 일이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더 평화롭고 안전한 방법은 없으신 거냐고 여쭙는 겁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시며 그 아버지께 사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예수께서는 매우 놀라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서 깨어 있어라.’ 그리고서 조금 나아가서 땅에 엎드려 기도하시기를, 될 수만 있으면 이 시간이 자기에게서 비껴가게 해 달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마가복음 14:32-36).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의 소원과 바램대로 응해주시지 않고, 그분의 본래 뜻과 계획을 따라 아들이 받아들이고 순종할 것을 요구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도 본래 뜻과 계획하신 방법을 그대로 이루어 가실 마음을 밝혀 주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보여주신 그 분의 뜻은 그의 마음을 더 무겁고 두렵게 했습니다. “해가 질 무렵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가운데,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창세기 15:12).


하나님은 아브람의 질문에 무슨 말씀으로 대답 하셨는지를 같이 살펴보십시다. 우선 하나님은 아브람더러 희생제물로 드릴 짐승들을 그분에게 가져 오라고 하십니다. (1)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 (2)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 (3)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 그리고 (4)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각각 한 마리씩을 가져 오라고 하십니다. 아브람은 이 짐승들을 주님 앞에 갖고 와서 죽인 후에, 비둘기들은 통채로 두고, 암송아지와 암염소와 숫양은 가운데를 쪼개어 둘로 나누어서 서로 마주보게 차려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짐승들을 갖고 오라고 하셨을까요? 이 짐승들은 어떤 의미를 가진 희생제물일까요? 많은 성서 해석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기를, 이 희생제물들은 아브람의 후손들을 상징하는 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생각과 해석을 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아브람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으려면, 자신들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려진 제물과 같아야 한다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왜 송아지와 염소와 양은 반으로 쪼개라고 하신 걸까요?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자신을 부인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내려 놓고, 특히 자신의 생각과 고집과 욕심과 취향까지도 깨끗하게 비운 그릇이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종종 하나님은 그분이 부르신 사람들에게 많은 시련과 아픔을 겪게 하십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만, 미처 몰랐던 자신의 죄악들을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하며 주님 앞에서 자기를 비우고 낮추니깐요. 다윗도 이걸 깨닫고 기도하기를 “주님은 제물을 반기지 않으시며, 내가 번제를 드리더라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찢겨진 심령입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시편 51:16-17)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람의 후손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려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철저히 낮추고 비우고 부인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비둘기들은 왜 쪼개지 않고 통채로 드렸을까요? 비둘기는 원래부터 정결한 짐승으로 보았습니다. 비둘기는 성결 또는 순결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그 분의 성품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신 후, 성령께서 그 분 위에 임하실 때도, 비둘기 같이 내려오신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모습으로 온전해진 그분의 백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되어 가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고 쉬운 길은 아닙니다. 자신의 죄와의 싸움을 이겨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듭니까?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일이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 여기에다 더 힘들고 괴로운 일을 더해주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오해와 방해와 박해들입니다. 이것을 본문 11절에서 솔개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솔개들이 희생제물의 위에 내려왔으나, 아브람이 쫓아 버렸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솔개들이 내려 와서 먹어 치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망가지고, 흠이 생기고, 뜯겨진 살덩이 밖에 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 드려질 것을 세상에게 빼앗기는 것이 되는 겁니다. 만일 아브람이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그 솔개들을 쫓아 버리지 않았다면, 모든 희생제물들이 더이상 주님께 드려질 제물들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이 때의 아브람의 고생과 수고는 결국 그 모든 희생제물이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질 수 있게 했습니다.


이것을 보며 우리 마음에 깊이 넣어 둘 교훈을 발견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거룩하고 온전한 그릇으로 되어 가는 과정은 많은 고통과 방해가 따르지만, 그 과정을 끝까지 잘 견디고, 우리 자신이 죄의 유혹으로 부패하지 않도록 애쓰고, 또 영적성장을 방해하고 믿음을 약하게 만드는 어려움과 환경 속에서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려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고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실제로 겪는 순간들은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아브람도 자신에게 이런 희생제물들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 의미를 깨달으면서, 불안함 속으로 빠졌습니다. “해가 질 무렵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가운데,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12절).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까지는 아브람의 공포와 어두워진 마음을 달래주는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구체적으로 아브람의 자손이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일을 당한 후에야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아브람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너는 똑똑히 알고 있어라” (13절). 무엇을 알고 있으라고 하십니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똑똑히 알고 있거라. 너의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종이 되어서, 사백 년 동안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13절).


아브람의 자손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으려면, 그리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 훈련 기간을 400년으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정말 길고 긴 훈련 기간입니다. 훈련 장소는 “다른 나라에서” 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집트를 가리킵니다.


훈련 내용은 세 가지가 될 거라고 하십니다. (1) 아브람의 자손은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살이를 하게 됩니다 (2) 그러다가 그 곳에서의 나그네살이가 종살이로 바뀌어집니다. 나그네살이를 마치면 곧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땅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그네살이보다 더 낮은 신분으로 떨어져서 더 힘들고 고된 종살이를 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3) 그리고 이 종살이는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아브람의 자손들에게 괴롬을 더해가는데, 그 길이가 장장 400년간 계속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온전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데리고 내려가시네요.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자존심과 고집이 있는 동안은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만 합니다.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욕심들이 있는 이상, 같은 고난과 연단의 시간은 그만큼 길어 질 수 밖에 없구요.


오늘 설교는 여기까지 반만 합니다. 전체를 다 하려면, 여기까지 한 길이만큼 계속 더해야 합니다. 나머지 반은 다음 주일에 계속하겠습니다. 그대신에, 오늘 드린 말씀을 결론적으로 요약해주는 히브리서 12장 4-13을 인용하며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죄와 맞서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자녀에게 말하듯이 하신 이 권면을 잊[지 마십시오]. ‘내 아들[딸]아, 주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에 낙심하지 말아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을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딸들]마다 채찍질하신다.’


“징계를 받을 때에 참아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녀에게 대하시듯이 여러분에게 대하십니다.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든 자녀가 받은 징계를 여러분이 받지 않는다고 하면, 여러분은 사생아이지, 참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가 육신의 아버지도 훈육자로 모시고 공경하거든,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복종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더욱더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육신의 아버지는 잠시 동안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징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징계하십니다.


“무릇 징계는 어떤 것이든지 그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정의의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똑바로 걸으십시오. 그래서 절름거리는 다리로 하여금 삐지 않게 하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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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entarios


ds031059
16 mar 2021

감사합니다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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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031059
16 mar 2021

아멘! 세월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이 귀한 설교 말씀을 읽지 못하고 오늘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제게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와 뜻을 알게 해 주시고 이 저의 처한 상황을 잘 이길수 있는 격려와 용기와 힘 그리고 믿음을 더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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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균목사 (Pastor Chun)
전재균목사 (Pastor Chun)
16 mar 2021
Contestando a

아멘, 저 또한 자매님의 믿음이 더욱 하나님의 신실함과 능력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고전 2:5), 자매님이 주님 앞에 엎드릴 때에, 때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고민과 고통을 눈물로 대신할 때마다, 주님이 위로해주시고 자매님의 소망과 믿음을 더 힘주십사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자매님]에게 있기를 빕니다" (빌립보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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